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청송 전투 (문단 편집) == [[독립기갑연대]]의 [[청송군]] 이동 == 7월 25일 [[대한민국 육군본부]]의 명령에 의거하여 [[대한민국 육군]]은 전투 편성이 1개 [[군단]] 6개 [[사단(군사)|사단]] 2개 독립[[연대(군대)|연대]][* [[제1군단]] 예하 [[수도기계화보병사단|수도]], [[제1보병사단|1]] ,[[제2보병사단|2사단]]과 육본 직할 [[제6보병사단|6]], [[제8기동사단|8사단]]과 독립기갑, 23연대, 호남 지방에서 활동하던 속칭 '민부대'로 불리던 [[제7보병사단|7사단]]]에서 2개 군단 6개 사단 1개 독립연대[* [[제1군단]] 예하 수도, 8사단과, [[제2군단]] 예하 1, 6사단 그리고 육본직할 3사단과 민부대 그리고 독립기갑연대. 2사단은 해체되어 예하부대는 1사단에 배속되었다.]로 바뀌었다. 이때 [[안동시|안동]]의 [[수도기계화보병사단|수도사단]]과 [[영덕군|영덕]]의 [[제3보병사단]] 사이에 80km에 달하는 빈 공간이 생겨 적의 침투로 인하여 아군이 포위될 가능성이 있었으니 이에 따라 육군본부는 투입할 수 있는 부대를 찾아 봤으나 가용부대는 모두 [[백두대간]]의 언덕들 속에서, 동해안의 개천가에서, 그리고 [[전라도|호남]]의 들판에서 적과 교전하고 있었으니 마침 독립기갑연대가 19일 대전에서 철수해서 [[대구광역시|대구]]에 집결했으니 본 연대는 작전 명령에 따라 교전지인 청송으로 전진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